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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일 오후 11:44에 작성됨.

간단 요약 : 재미없지만 충실한.

디렘 프로를 산 다음에 당분간 이어폰은 안 살 계획이었는데, 우연찮게 영디비에서 공구를 한다고 해서 구입한 친구이다.

트루스이어는 2022년에 나온 신생 브랜드인데, 수월우의 엔지니어가 가서 만든 점 등을 볼 때 전반적으로 수월우의 멀티로 추정되고 있는 브랜드이다. 수월우가 이제 VSDF라는 고유의 하우스 사운드를 만들어 가고 있는데, 이것과 달라진 소리를 내는 제품들을 내놓기 위한 브랜드인지 아니면 해외를 타겟으로 해서 만드는 브랜드인지, 아니면 둘 다일지는 모르겠지만 수월우와는 전반적으로 다른 느낌의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

박스 자체는 믿음과 신뢰의 일러스트를 제외한다면 평이한 느낌이고, 박스 뒷편에 간단한 스펙과 함께 측정치가 기재되어 있다. 스펙을 보면 이어폰 유닛당 DD 하나랑 BA 3개가 있는 하이브리드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임피던스는 보통 많이 보던 16옴보다는 높은 20옴이고, 감도도 좀 낮은 편이라 평소보다는 볼륨을 올려야 같은 음량이 나올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박스를 열어 보면 이어폰 유닛과 케이블, 팁들이 있는데 실리콘 팁은 가운데 노즐이 넓은 것과 좁은 것, 그리고 한 가지 사이즈의 폼팁이 있다.

이어폰 유닛 자체는 메탈 재질의 백플레이트와 레진 쉘로 이루어져 있는데, 레진은 반투명해서 내부 배치가 보이는 구조이다. 쉘은 흔히 그렇듯이 금형으로 찍어 낸 것은 아니고 3D 프린터를 사용해서 뽑아 낸 것인데 금형비가 안 드니까 전체적인 생산비를 절약할 수 있는 대신에 금형을 쓴 것보다는 찍어내는 속도가 느릴 것이라 생각한다.

드라이버는 3개의 BA과 1개의 DD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중역대를 담당하는 BA 2개에 저역을 담당하는 DD와 고역을 담당하는 BA 하나가 붙어 있는 모양새인데 고역대를 담당하는 BA가 별도의 도관을 통해 노즐로 가는 등 멀티 드라이버에서 흔히 보이는 위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설계로 보인다. 대신 노즐에 여러 도관이 독립적으로 연결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노즐이 커질 수 밖에 없어서 나처럼 귓구멍이 작은 사람은 팁을 잘 못 고르면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기본 케이블은 케이블 4개를 꼰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은도금 선이다. 케이블 끝부분에는 수축튜브같은 재질로 된 이어가이드가 붙어 있어서 꼰 부분이 귀에 직접 닿지는 않는다.

소리를 들어 보면 전체적으로는 얌전한 인상이다. BA를 쓴 이어폰들이 일반적으로 그런 것처럼 반응이 빠른 소리가 나는데, 중저음 부분은 DD 하나가 존재감을 내듯이 둥둥 울린다.

DIREM을 위시한 SF드라이버를 쓴 이어폰들은 해상도가 좋은 대신에 해상력이 좋은 티를 내듯이 중고역대와 초고역대를 키워놓아서 전체적으로 쨍한 인생을 주고 사람에 따라 쏜다고 느낄 수 있는데, 이 친구는 중고역대를 살짝 낮춰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

저역대는 DD가 담당하고 있는데, 0db의 측정으로는 100db 이하를 주로 내고 천천히 롤오프하게 설계되어 있다. 메인 드라이버를 담당하는 2개의 BA도 저음이 그렇게 안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극저역대부터 베이스 기타까지의 대역이 매끄럽게 부풀어 있어 깔끔하지만 양감이 있는 저음을 낸다. 하지만 터보 베이스를 키고 돌린 것처럼 2~300hz까지 부스팅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중저음을 컨셉으로 삼은 이어폰들(ATH-IM50같은 친구들) 과는 다른 인상을 준다. 어디까지나 베이스 기타의 존재감까지를 살린 정도의 튜닝이다.

사용한 DD는 PU 재질의 엣지에 액정 폴리머 진동판으로 되어 있는데, 액정 폴리머가 강성이 강하고 얇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마일러 재질의 DD보다는 특성이 좋다. 0db의 측정에서도 DD가 담당하는 부분의 THD가 0.5% 정도로 나오고, 같은 구성의 드라이버를 쓴 ZERO의 THD가 전체적으로 0.5% 이하임을 보면 꽤나 우수한 드라이버로 보인다. 그리고 코일을 무겁게 해서 임피던스를 끌어올리고 고음역대를 못 내게 한 구성인데, 보통 고음을 못 내게 하려면 드라이버는 그대로 냅두고 필터를 써서 고역대를 컷하는데 이 친구는 드라이버부터 저음만 나오게 한 특이한 구성.

중역대는 반응이 빠르고, 다양한 악기가 나오는 곡에서도 소리가 깨지거나 흐려지지 않고 준수한 소리를 들려 준다. 가끔 특성이 안 좋은 이어폰들이 킥 드럼의 타격음이 뭉개지고 저음 부분만 들리는데, 이 친구는 타격부까지 잘 살려 준다. 하지만 6khz부분이 억제되어 있기 때문에 SF드라이버를 쓴 이어폰들처럼 하이햇, 심벌즈, 스네어 드럼의 타격감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신에 치찰음이나 쏘는 것이 없으니 장시간 동안 편하게 듣기 적합하다.

고음부를 내 주는 BA는 저음부 DD가 부스트를 해 주는 것과는 다르게 거들어 주는 정도로 세팅되어 있기 때문에 고음이 쨍한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BA 하나만을 썼을 때 고음이 빨리 롤오프 되어서 공간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고음부 BA가 보강해 주기 때문에 전체적인 가청 주파수 대 소리를 준수하게 내 준다. 특히 신디사이저의 Lead들이 HPF를 써서 고음역까지 긁어 주는 패치들이 많은데 이런 악기들이 죽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 준다. (하지만 6Khz 부분이 억제되어 있기 때문에 존재감을 강하게 어필하는 튜닝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이 친구는 정가 80달러에 준수하게 튜닝된 하이브리드 이어폰이다. 하지만 입문자가 이걸 접할 때 중고음이 억제된 것 때문에 음질이 낮게 느낄 수 있으니 입문자에게 추천할 만한 이어폰은 아니고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 내 추천 입문 이어폰은 디렘 E3이다.) 입문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추천하기 좋은 이어폰으로 생각된다. 처음 듣는 사람이 고음질이라고 느끼는 것에서 단정하지만 준수한 제품으로, 그 다음에는 자기 성향에 맞은 물건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 단계를 거치기에 충분한 제품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Truthear란 브랜드 자체가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브랜드는 아닌 것 같고, 3월 20일부터 시작된 알리익스프레스 13주년 할인을 거치니 제품이 전부 매진되어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은 제품이 되었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만 일단은 Truthear의 한국 디스트리뷰터가 앵키하우스니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PS : 셀라스텍 등 여러 이어팁을 쓰다가 맥스로 정착했다. 큰 노즐로 인해 생기는 압박감도 없고, 깊이가 좀 더 깊어졌는지 살짝 더 밝아진 톤으로 바뀌었다. 약간 더 재밌어진 이어폰이 되었다.

PS2 : TWS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