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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6일 오전 7:03에 작성됨.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 유튜브와 같은 거의 완벽하게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공유해야 하는 공간, 이를테면 까페나 위키와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어느 정도의 제약이 생길 것이다. 개인 공간이라면 어떤 글을 쓰던간에 (내가 이 블로그에서 써제끼는 것처럼 말이다) 글 내용에 따라 욕을 먹을지언정 남을 고려해서 쓴다는 인식을 잘 갖지 않아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환경이어도 남 보기 좋은 글을 써야 PV가 늘어나고 광고를 달았다면 수익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남을 고려하겠지만, 그건 그 사람의 일이니 여기서는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어떠한 제품을 다루는 커뮤니티에서 사용기를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은 유저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유저로서’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서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같은 입장에서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글을 올리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기대하면서 글을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는데, 제품의 특징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에게 제품을 “소개”와 “평가” 하는 차원에서 글을 적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서는 사용기를 공유한다기보다는 여러명이 공동집필하는 웹진과 같은 구성이 될 것이다. 이 경우에는 글을 읽는 사람과 글을 쓴 사람은 같은 입장에 있지 않다. 어느 정도 일방적인 구성이 되는 것이다.

내가 기글에만 리뷰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나도 어쩌다 보니 여러 제품을 접하게 되고 (대부분은 내가 속한 디스코드 그룹이나 텔레그램 채팅방에서나, 친구들과 있는 단톡방에서나 적지만) 그 제품에 대해서 경험을 공유하는 기회를 여러 번 갖게 되었다. 예전에는 리브레 위키에다가 글을 적을 때에는 기본적으로 글쓴이의 주관을 배제한 채로 정보를 정리하기만 했지만, 어느 정도 발이 넓어지고 경험을 공유하는 즐거움이 생겼기 때문에 글을 쓸만한 공간을 찾기 시작했고 여러 고민 끝에 기글하드웨어에다가 글을 적기 시작했다. 이때가 작년 하반기일 것이다.

왜 기글하드웨어에다가 글을 적기 시작했느냐 하면 생각보다 단순하다. 여기 올라가는 글들은 기본적으로 내돈내산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주로 글을 쓰는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커뮤니티에 더 많겠지만 이 이유 때문에 기글하드웨어를 골랐다. 기글은 제품을 제공받았거나 돈을 받은 글들을 따로 넣어놓는 짬통같은 게시판이 따로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 게시판을 안 보는 듯 하다.) 그래서 위에 말한 대로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트 주인장은 좀 특별한 존재이니 접어 두도록 하자.)

내돈내산의 중요성에 대해서

내돈내산의 중요성은 위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아무리 기자의 능력이 시궁창에 떨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보다 돈을 많이 들인 컨텐츠를 소비함으로서 경험이 아닌 평가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런 곳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프로이기 때문에 (일부 예외는 있지만) 경험과 능력을 바탕으로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리뷰어들보다는 나은 필력을 보여 준다. 그리고 꽤나 비싼 장비를 바탕으로 나은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는 환경에 있기도 하다. 그리고 단순한 리뷰어들보다는 제품을 제공받았다고 해도 의뢰인에 대한 발언권이 더 강하다. 그래서 보통 넘쳐나는 필드테스트나 제품을 받아서 쓰는 리뷰보다는 아예 이런 것들을 접하는 것이 더 낫다. 내가 보는 매체가 그런 제품을 다룬다면 말이다.

다른 이유는 내용의 신뢰성에 대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언급한 내용이지만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더라도 입장에 따라서 글에서 얻을 수 있는 내용은 차이가 있다. 글의 내용이 같다고 하더라도 이해관계가 얽힌 글은 어느 정도 내용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학창시절에 주구장창 배워 온 비판적 읽기가 아니겠는가)

보통 이런 글 말미에 적힌 “~로부터 제품을 제공받았지만 리뷰어의 의사대로 작성하였습니다”란 글이 있지만 이런 글들은 별다른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제조사나 유통사에 비해서는 리뷰어들은 상대적으로 을이다. 아예 미친척하고 가지 않는 이상 제품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이나 개선점을 적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결국 나온 결과물들을 보면 제조사나 유통사가 내놓은 홍보자료랑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 된다. 더더욱 볼 필요가 없는 글이 되는 것이다.

또다른 요소는 글을 적은 사람의 능력이다. 2000년대의 파워블로거와 2010년대의 유튜버와 SNS 인플루언서 열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쪽 판에 뛰어들었고 수많은 컨텐츠가 나오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이렇게 뛰어든 사람들 중에는 상당수가 어느 정도 일확천금과 같은 (약간은) 속물적인 요소를 바라보고 글을 쓰게 되고, 사전에 배경지식이나 제품을 보는 경험을 그리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이 내놓은 글은 결국 제조사나 유통사가 제공한 자료들이나 기존의 (자기와 비슷한 입장의 사람들이 쓴) 리뷰를 참고하는 것이 상당수이고, 이것도 역시 홍보자료와 별다른 정보를 얻을 만한 것이 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어느 정도 전문성이 부족하더라도 자신의 순수한 경험을 내놓은 글은 가치가 있지만, 이해관계에 얽힌 (반쯤은 억지로 쓴) 글은 가치가 없는 글이 된다.

씁슬한 경험에 대해

보통 이런 것들을 접하는 것은 일상에서 자주 있는 일들이어서 보통은 신경쓰지 않는다지만 아예 제품 자체가 특이한 물건은 보게 되는데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글들을 몇 가지 보게 된다.

주로 관심이 있는 분야가 오디오 쪽이다 보니 보이는 것이지만 이쪽은 제조사의 능력이 천차만별이다. 특히 디지털 분야는 더더욱 그렇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브랜드들은 아날로그만 깎다 보니 디지털에 대해서는 무지한 경우도 있고, 아예 새로 진입한 브랜드인데 기술적 기반도 없다 보니 밑천이 딸리는 브랜드도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플랫폼 제조사에 의존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대부분 좋은 결과물을 내 준다.) 하지만 웃긴 케이스가 몇 가지 생기는데, 아이폰이 3.5mm단자를 빼버리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이후 꼬다리 DAC 시장이 좀 많이 커졌는데, 서피스 꼬다리랑 같은 부품에 (아마 칩셋 제조사 레퍼런스 회로를 썼을) 곽 좀 바꾸고 LED 좀 박고 소프트웨어만 바꿔서 한 2~3배의 가격에 내놓은 물건이었다. 기가 차서 몇 마디를 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제품을 옹호하던 리뷰어의 모습을 보았다. 좀 나은 사람이었다면 외장의 차이나 탑재된 소프트웨어의 품질을 봐서 이 가격이 적절한지, 다른 제품에 비해 나은지를 봤겠지만 (나라면 바로 이런 제품은 사기행위라면서 맹렬히 욕을 했을 것이다!) 템플릿에 벗어나지 않는 글이 나왔고, 나는 그 사람이 쓴 글을 여러 사이트에서 (심지어 기글에서까지도!) 찾아봤지만 다 비슷한 구성에 제품만 달라진 걸 보고 그저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또 다른 케이스는 나도 리뷰를 적었던 HUD100 이야기이다. 이 제품은 한 차례 리비전을 적었고 그때 유통사는 홍보를 위해 리뷰를 풀었던 것 같다. 이 제품은 해외에서 측정을 통한 리뷰에서는 스펙시트에 적힌 내용이 사기에 가까울 정도의 낮은 수치가 나와 제조사 관계자가 포럼에 사과까지 한 제품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전에 쓰던 제품보다는 나았다.) 이런 점이나 제품의 하드웨어 이야기 같은 내용은 온데간데 없고 제조사 홍보자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만 가득했다. 이때도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글들은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경우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유저로서의’ 경험이 들어가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글이 되지만 돈과 제품을 받고 쓴 글이 제조사 홍보자료랑 내용상 큰 차이가 없다면 그 글은 가치가 없다. 차라리 홍보자료를 쓴 홍보팀 직원이 그 제품에 대해 그 리뷰어보다 더 잘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이런 글들이 제대로 쓴 글들보다 넘쳐난다.

하지만 더 위험한 것

이런 글들은 최소한 자기 글의 가치를 알리니 그나마 낫다. 올해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던 유튜버 뒷광고 건과 같이 아예 읽는 사람을 속이는 글은 이것보다 더 위험하다. 여러 군데에서 주워들었고 완벽하게 신뢰할 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유통사들끼리의 바이럴 마케팅이 넘쳐나고 어느 글이 진짜 글인지, 아니면 사기인지 구분하기 힘든 판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돈내산’이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결국 읽는 사람이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씁슬하고 화나는 세상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