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데 7 분 정도 걸려요
2021년 1월 29일 오후 10:35에 작성됨.

이 블로그에서까지 위키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위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이 주제는 꽤나 흥미로울 것 같아서 글을 적어 본다.

나무위키는 여러 가지 구설수도 있지만 나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위키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내가 주로 다루던 15~16년의 나무위키와 17~18년의 나무위키, 그리고 지금의 나무위키는 상당히 다른 위키가 된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기존에 내가 적었던 수많은 나무위키에 관한 글도 지금 다시 생각한다면 수정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생길 것이다. 그러면 내가 잘 알던 시절의 나무위키와 지금의 나무위키의 주요한 내용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이 이야기를 오늘 해 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나는 위키에 대해서 이야기할때는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왔다. 나름의 “위키커뮤니티” 해석을 기반으로 말이다. 이것은 위키가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설명하기엔 매우 유효하다. 하지만 위키가 돌아가는 방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시스템은 그렇게 큰 비중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문서를 읽기만 하기 때문에 결국은 문서의 특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문서의 특성 이야기를 할 것이다.

템플릿화 현상

리그베다 위키 시절에는 “템플릿”이란 것이 있었다. 문서의 양식을 미리 만들어 놓고 여러 군데에 가져가서 쓰는 것이다. 대충 이런 걸 보면 어떻게 생겼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걸 만들고자 하는 문서에다가 복사한 다음에 내용을 채워나가면 새로운 글의 구조를 고민하는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새 문서를 적극적으로 만들 수 있다. 나름 틀 기능이 부족한 것을 각 분야를 다루는 문서의 공통점을 반영해서 비슷한 구조로 만드는 것으로 보완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템플릿들은 문서 오른쪽의 정보상자나 반복되는 구조를 미리 만들어서 편하게 쓰라는 것에 가까운 기능으로 사용되었다.

시간이 지나서 나무위키가 생기고 안정화된 다음에도 위키러들은 상당수 리그베다 위키에서 쓰던 방식대로 글을 썼다. 그 과정에서의 혼란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음에도 (리브레 위키는 그렇게 빠져나온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었던 측면이 있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나무위키에 남아있었고 그 사람들은 당연히 리그베다 위키에서 쓰던 방식대로 문서를 썼기 때문에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그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나무위키의 기능이 리그베다 위키보다 더 좋았다.)

하지만 대충 16년과 17년을 지나며 나무위키의 유저층은 꽤나 변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디시인사이드발 유입과 저연령화로 추정되는 것들이 일어났다. (확답할 수는 없는 이유는 내가 나무위키의 유저들을 일일이 다 까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꽤나 많은 논쟁과 싸움과 뒤를 이은 유저 이탈을 겪은 다음의 나무위키는 이전의 나무위키와는 편집자 측면에서 꽤나 다른 물건이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원인이 영향을 주었다.

“나무위키 프로젝트”는 꽤나 성공적으로 유저들을 조직화하는데 성공했다. 상당히 많은 유저들이 이름을 올렸고, 문서 상단에는 그 문서가 해당 프로젝트의 관할임을 알리는 틀이 붙었으며, 문서의 편집 방향은 프로젝트의 내부 논의에 따라 정해지는 일이 많았다. (이런 상황은 리브레 위키의 마당의 성질을 정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프로젝트의 성과는 편집한 문서의 수를 통해 정량적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이는 확실한 동기가 되었고, 유저들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편집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양을 늘리기 위한 편집은 양면성을 보였다. 관심이 부족해서 생성되지 않은 분야에 대한 문서가 상당수 생성되었다. 반면 편집자들의 관심을 문서의 질에서 양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 문서의 내실은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분야를 하나 들어보자. “나무위키 스마트 디바이스 프로젝트“란 것이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이름만 들어도 알다시피 대충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같은 것들을 다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분야는 꽤나 표준화하기 쉬웠다.

리그베다 위키의 “갤럭시 S III” 문서와 나무위키의 “갤럭시 S8″ 문서를 서로 비교해 보자. 리그베다 위키와 나무위키는 기본적으로 스펙시트까지는 비슷하다. 리그베다 위키에서 사용하던 방식이 나무위키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뒤로 가면 나무위키가 모바일 환경에서의 스크롤을 줄이기 위해서 많은 내용을 가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밑의 본문부터는 꽤나 달라진다.

꽤나 뒤에 만들어진 나무위키에서의 “상세” 문단은 스펙시트를 그대로 다시 읽거나, 다루는 것들이 다른 문서들과 비교해 봤을때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반면 리그베다 위키에서는 다른 문서들과 비교해 보면 그 당시에 회자되던 점들 위주로 서술되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나무위키에서의 “카메라 강화”나 “사운드 강화”와 같은 것들까지를 보면 정해진 틀을 놓고 스펙시트를 보고 내용을 채우는 것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이거나 저거나 내용이 비슷한 것들은 복사-붙여넣기 한 모습도 보인다. 이런 현상은 많이 회자되는 대상보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아 편집이 정체된 대상에 관한 문서일수록 더 강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현상을 “템플릿화 현상”이라고 이름붙였다. 문서들이 독립적으로 쓰이던 것에서 하나의 템플릿에 맞추어 빈칸을 채워나가는 것과 같은 것 말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던 “편집자의 수준 저하”와 연관지어서 해석된다. 좀 더 기술적인 분야에 대해서 말을 하거나, 소식을 민감하게 접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적어져 스펙시트를 그대로 옮길 수밖에 없는 사람들 내지는 그정도만 해도 된다는 문화가 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더 사람들이 나무위키와 “수준 저하”를 연결시키는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악의적인 편견과는 별개로 말이다.

분쟁회피 성향

그 다음으로 중요한 변화는 분쟁회피 성향이다. 사실 15년의 나무위키와 16년 초중반의 나무위키는 여성시대 분쟁과 메갈리아의 출현과 깊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무위키와 분쟁을 떼어놓는 것은 틀린 해석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의 나무위키는 온갖 분쟁에 다 끼어들어 내용을 정리하거나, 나무위키에서 사건과 집단의 특성을 재정의하기 위한 온갖 집단 간의 싸움장이 되었다. 여성시대 사태와 메갈리아 출현과 관련한 사건에서 나무위키는 요즘의 인식으로 볼 때 “사이버 렉카”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할 수는 있으나, 당시 활동했던 사람들이 흔히 치던 것인 “사관”드립을 볼 때 나무위키는 염연한 분쟁의 한 축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면 나무위키가 디시인사이드 “무한도전 갤러리”의 식민지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이 말도 일부 맞다.)

이런 일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은 첫번째로는 나무위키의 법적 상태가 명확하지 못했던 것이고, 두번째로는 SPOV와 관련이 있다. 우선 법적 책임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더라도 분쟁 상대방으로부터 법적인 위협을 받지 않을 수가 있었고 (나무위키를 만든 사람은 문제시 소라넷과 같은 식의 운영을 해서라도 검열을 피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문서의 관점이 토론을 통해 단일하게 정해졌기 때문에 어떻게든 논쟁에서 이겨 우세한 위치를 차지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나무위키 토론란은 온갖 논쟁이 벌어졌고 당시 유저들은 당연히 토론만 하다 위키가 망할 것이라고 외치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이 현상은 16년 말쯤에 위키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서 바뀌게 된다.

새로 나무위키를 맡게 된 곳은 나무위키의 운영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사업 분야를 가지고 있었고 (주 사업 분야는 코인질이다.) 자연히 나무위키는 약간 애물단지가 되었다. 당연히 광고수익은 짭짤하지만 서버비용과 트래픽 비용이 꽤나 많이 나갔기 때문에 그렇게 큰 수익이라고는 볼 수 없었을 것이고 (당연히 이건 아무 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실제 수익이 어쩐지 이제 어떻게 아는가?) 자연스럽게 나무위키의 운영은 최대한 문제를 덜 붙이는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와는 별개로 실제 나무위키의 운영은 꽤나 분쟁회피적으로 바뀐 건 사실이다. 관리자는 상당히 일관적으로 분쟁을 일으키거나 외부와의 잦은 커넥션이 있는 사람들을 갖은 명목으로 차단했고 초기의 SPOV 성향은 명목만 남고 대부분의 분쟁이 잦은 문서는 MPOV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MPOV는 구스위키식의 MPOV를 주로 벤치마킹했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보통 이 금기를 깨면 신고와 차단을 먹었다.

그 결과 꽤나 많은 논쟁적인 문서들은 대부분 긍정론과 부정론으로 나뉘어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적게 되었다. 특히 16년 이후 극단적으로 갈린 한국의 정치 환경과 더불어서 두 관점 사이에 소통이 불가능해진 점과 궤를 같이한다. 나무위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집단인 디시인사이드와 루리웹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의도치 않은 맹점을 가져오는데 이렇게 한번 자기 입장을 정리했고, 남의 입장은 건드릴 수 없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문서를 더 이상 건드려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건드려야 할 이유는 있지만 건드릴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문서들이 정치/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을 때는 활발히 편집되고 그 다음에는 편집이 죽어버리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또한 한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편집하는 유저들이 점점 떠나갔기 때문에 (이는 세대교체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 블로그 글을 참조하면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일반적인 문서나 논쟁적인 문서 상관없이 비슷한 상태가 된 것이다. 또한 기존에 쓰여진 내용을 크게 건드리지 않고 새로운 사건만 추가하는 일종의 적층식 문서 구조도 상당히 그 비중이 증가하게 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사이버 렉카”가 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결론

위키의 생명은 지속적인 검토와 수정에서 온다. 위키러들은 완벽하지 않으며 꽤나 일반적인 사람들이 기대하는 수준보다 낮은 퀄리티의 글을 생산한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국평오 현상과도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꽤나 자신의 위치를 높게 생각한다.) 이를 보완하는 것은 커뮤니티 차원에서의 끊임없는 검토와 수정, 그리고 논쟁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건을 거쳐서 이것이 사라지게 된 나무위키는 역설적으로 가장 활발하지만 가장 죽은 위키가 된 것이다. 그렇게 된 상황을 상징하는 것은 “템플릿화 현상과 분쟁회피 성향” 이었고 단순한 양적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사람들이 받을 현실을 보여주었다.

이런 모습은 결론적으로 본의 아니게 다른 위키들에게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위키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니만큼이다.